오늘의 답사 장소는 옛 철도의 중심 용산의 철도공장지대(용산철도정비창 부지) 경계를 돌아보며 용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용산역은 무려 1900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1924년 경성역(서울역)이 준공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제일 큰 역이었답니다. 역시 용산은 철도를 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용산역의 철도정비창과 만초천, 만초천교, 그리고 새남터 순교성지와 서울에 몇 안남은 철도 건널목 백빈건널목, 철도 관사터를 돌며 용산의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9월 임에도 여전한 무더위에 참가자 분들의 컨디션이 걱정이었습니다만, 다들 용산역사문화 사회적협동조합 도현남 해설사님의 인솔에 잘 따라주시고 잘 걸어주셔서 계획한 대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용산 맛집에서 먹는 점심은 정말 꿀맛이더군요. 다음 걷기모임은 무더위가 정말 지난 10월 첫째주 일요일에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 관리 잘 하시고 다시 뵙겠습니다!
9월 답사코스 - 철도 명암의 길 소개
2024. 9. 8. 도현남 용산역사문화 사회적협동조합
옛 철도공장지대(용산철도정비창부지)의경계를 따라 함께 걸으며 한강철교와 용산역이 연이어 세워지고, 철도가 놓임으로써 많은 영향을 받았던 용산의 역사를 살펴보는 길
#용산역
용산역은 노량진까지 운행했던 경인선이 한강 북쪽까지 개통된 1900년에 영업을 시작.
1904년 러일전쟁 발발하자 일본은 경의선을 부설했고, 1906년 용산역을 기점으로 경의선을 완공했다. 1925년 경성역(오늘날 서울역284)이 준공되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역이었다. 용산역은 일본군이 침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장소이면서 징용. 징병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족과 작별한 장소이기도 했다.
#용산 철도정비창
용산 철도정비창은 일제강점기 때 용산역 배후지역에 철도 공장들이 있던 지역으로, 현재는 철도정비창 부지로 불린다. 일제는 1905년 용산역 서쪽에 철도 차량 수리를 위해 '용산공작반'을 설치했고, 1923년 '경성 공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기관차와 객차·화차를 직접 제작하고 수리하던 한반도 최대의 철도 공장이자, 대표적 철도공장이었다.
#만초천과 만초천교
만초천이란 명칭은 주변에 만초라는 풀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이고, 넝쿨내로 불렸다. 이 하천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밖 서남부 지역의 중요한 하천으로 인왕산과 안산 사이 무악재 기슭에서 흘러 오늘날 청파로와 용산전자상가를 거쳐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7.7km 긴 물줄기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만초천이 아닌 '욱'이라고 불렸고, 이는 현재 지명 중 욱천고가도로의 명칭에서 그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 만초천은 복개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고, 물길이었던 자리는 현재 차도가 되어 여전히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로서 활용되고 있다.
#새남터
새남터 순교성지는 조선시대 연무장이자 사형수들을 처형하던 처형장이었다. '새남터'란 조선시대 무녀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죽은 사람의 혼령을 천도시키기 위하여 '지노귀새남'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강 제방이 축조되기 전 이곳은 광대한 모래사장으로 군인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조선시대 일반 죄인이 서소문 밖과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남이장군도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시킨 곳으로, 현재는 천주교의 성지로 여겨진다.
#백빈건널목과 철도관사 터
서울에 몇 안 남은 철도 건널목 중 하나로, '땡땡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건널목과 용산역 주변에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졌던 철도관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
에 많이 있었던 철도관사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수해를 입은 경우가 많아 효창동으로 일부 이전하였다.